화면엔 답이 있는데 폰에는 없었다
11:37, 헤르메스에서 창을 비운 뒤 질문을 넣었습니다. 커서 화면에는 답이 떠 있었습니다. 폰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록용 브릿지는 이미 공개본이 있습니다. 커서는 그 옆자리입니다. 집 컴퓨터의 커서 창을 텔레그램으로 부리는 다리입니다. 형제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설정과 슬래시 명령이 서로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구멍도 그록 다리가 아니라 커서 다리의 것이었습니다.
창을 비운 뒤, 배달이 빠졌다
증상은 단순했습니다. /clear 로 일기장을 갈았습니다. 새 질문이 창에 들어갔고, 답도 창에 끝났습니다. 브릿지는 그 답을 집고도 텔레그램으로 넣지 않은 채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늘리는 수리는 이미 여러 겹이었습니다. 없는 것은 「보는 파일이 맞나」가 아니라, 「집었으면 넣었나」였습니다.
한 줄 고치면 됐습니다. 창을 비운 뒤 새로 나온 답이면 배달까지 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침묵이 다른 모양으로 한 번 더 왔습니다. 끝난 줄 알고 버린 핀을 돌리면, 새 답이 있어도 송신 횟수가 0이었습니다. 그 축도 닫았습니다.
보낸 척이 보낸 것보다 빨랐다
오후에 독립해서 읽어 보니, 구멍이 한 층 더 있었습니다.
답을 사람 앞으로 다듬는 칸이 비어 있으면, 실제 전송은 안 합니다. 그런데 고아 답을 줍는 쪽이 「보냈다」는 숫자만 올리고 자리를 선점했습니다. 장부에는 성공이고, 폰에는 없습니다. 같은 답을 두 번 시키면 일이 두 번 됩니다.
전부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2시 12분, 볼칸에서 커서 다리가 맡은 한 턴은 질문·답·장부 전송이 한 줄로 끝났습니다. 오후 2시 34분 아테나에서 창에 직접 붙여넣은 글은 그 다리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컬 거울일 뿐입니다. 창에 글자가 있다고 폰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없는 경로를 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디스크에 없는 추적 문자열을 원인으로 쓰지 않았고, 다른 노드의 옛 다리 이름을 끌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람 한 줄, 확인 하나
그 다음 층은 말투가 아니었습니다. 보내는 칸이었습니다.
폰으로 나간 첫 줄에 검사 태그·프로세스 번호·커밋 조각이 붙었습니다. 그록 다리는 사람 한 줄을 보냅니다. 커서 다리도 그렇게 맞추는 중이었습니다. 「이어서 해줘」 단추는 넣지 않습니다. 확인 단추는 남깁니다.
창이 한 줄로 떨던 날도 겹쳤습니다. 기다리는 줄과 아래 화살표가 같은 박자로 다시 그려지고, 키를 더 보내면 춤이 커졌습니다. 키를 거두는 수리는 본선에 들어갔습니다. 기다림이 다시 켜질 때의 표본은 그날 저녁 창이 한가해서 못 찍었습니다. 없는 춤을 멈췄다고 쓰지 않습니다.
브릿지를 끄라는 유혹은 매번 있습니다. 끄면 폰과 집이 같이 끊깁니다. 그날 고친 것은 커서 레인뿐입니다. 그록과 클로드 레인은 그대로 뒀습니다.
배운 것
창에 답이 있는 것과 폰에 답이 있는 것은 다른 사실입니다. 「보냈다」는 숫자는 세 번째입니다. 숫자가 전송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숫자는 증거가 아니라 자리 차지입니다.
다음에 같은 침묵이 오면 이 세 줄만 보면 됩니다. 창을 비운 뒤 새 일기장을 보고 있는가. 사람 앞으로 다듬은 칸이 비어 있지 않은가. 장부의 송신 숫자가 실제 전송과 같은가.
— 강대종 / @ssamss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