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다섯 대를 비서 한 명처럼 부리기까지
바이브코딩 뉴스레터 Ep.15 — 기기마다 다른 도구를 쓰다 하나로 통일하고, 다섯 대가 한 팀이 되기까지
처음엔 노트북 한 대였다. Claude Code를 켜고 앱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책상 위가 좀 이상해져 있었다. 맥북, 맥미니, 데스크탑, 또 데스크탑, 노트북. 다섯 대. 비전공자가 앱 좀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 작은 전산실이 됐다.
처음부터 이렇게 통일돼 있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동안 기기마다 다른 도구를 썼다. 어떤 기계엔 Codex를 깔고, 어떤 데는 OpenClaw라는 걸 붙이고, 본진 맥에는 Claude Code를 썼다. “이건 이게 낫다더라” 하는 글을 보면 그 기계에 그걸 깔았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이 늘 시끄러웠다. 맥미니에 시킨 건 이 명령어로, 데스크탑에 시킨 건 저 명령어로. 같은 일을 시키는데도 기계마다 말투를 바꿔야 했다.
결정적이었던 건 어느 날 빌드가 깨졌을 때다. 맥미니에서 아이폰 앱을 빌드하다 에러가 났는데, 그 도구의 에러 메시지가 내가 본진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똑같이 “왜 안 돼?”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의 결이 달라서, 나는 매번 다른 비서한테 처음부터 사정을 설명하는 기분이었다. 비전공자한테 제일 힘든 게 이거다. 도구가 다섯 개면, 모르는 것도 다섯 배가 된다.
그래서 다 갈아엎었다. 다섯 대 전부 Claude Code 하나로 통일했다. Codex도 OpenClaw도 다 걷어내고, 똑같은 걸 깔았다. 처음엔 “그래도 기계마다 잘하는 게 다른데 굳이?” 싶었는데, 막상 통일하고 나니 그 고민 자체가 사치였다는 걸 알았다. 내가 도구 다섯 개의 성격을 다 외우는 것보다, 하나를 깊게 아는 게 백배 편했다.
통일하고 나서 진짜 재밌어진 건 그다음이다. 다섯 대가 다 똑같은 비서가 되니까, 이번엔 얘네를 구분하는 게 문제였다. 다 같은 얼굴이면 누구한테 시킨 일인지 헷갈리니까. 그래서 텔레그램 봇을 기계마다 따로 하나씩 만들었다. 맥북은 🍎, 맥미니는 🏭, WSL은 🪟, 데스크탑은 🖥, 노트북은 💻. 답장 첫 글자에 무조건 그 이모지를 박게 했다. 폰으로 메시지가 오면 첫 글자만 보고 “아 이건 데스크탑이 한 말이구나” 하고 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다섯 대를 폰 하나로 부리는 입장에선 이게 생명줄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기계끼리 서로 명령을 주고받게 했다. 본진 맥이 “이 일은 데스크탑이 더 적합한데” 판단하면, 데스크탑한테 직접 작업 지시서를 쏴 보낸다. 데스크탑이 일을 끝내면 다시 본진한테 결과를 보고한다. 사람으로 치면 팀장이 팀원한테 일 시키고, 팀원이 보고서 올리는 구조다. 나는 그 사이에서 텔레그램으로 구경하다가 가끔 “그건 하지 마” 한마디 거드는 정도다. 이 글도 사실 본진 맥이 데스크탑한테 “다음 뉴스레터 초안 써놔”라고 시켜서 데스크탑이 쓰고 있는 거다.
물론 삽질도 많았다. 한번은 기계 두 대가 같은 파일을 동시에 고치다 충돌이 났다. 한번은 명령이 두 경로로 전달되는 바람에 같은 일을 두 번 한 적도 있다. 또 한번은 어떤 기계가 보낸 메시지인지 표시가 빠져서 “이거 누가 한 거야?” 추적이 안 됐다. 그때마다 규칙을 하나씩 더 박았다. 같은 파일 동시 수정 금지, 명령은 한 경로로만, 발신 이모지 필수. 거창한 설계가 아니라, 사고가 날 때마다 “다음엔 이러지 말자” 메모를 붙여 나간 것에 가깝다.
배운 게 있다면, 도구는 적을수록 좋다는 거다. 비전공자일수록 더 그렇다. 멋져 보이는 새 도구를 기계마다 깔고 싶은 욕심이 늘 든다. 근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를 깊게 아는 거였다. 다섯 대가 다 같은 말을 알아들으니까, 비로소 다섯 대가 한 명의 비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기 전에 폰으로 “오늘 마무리” 한마디 던지면, 다섯 대가 알아서 일지를 쓰고 정리를 한다. 첫 글자 이모지만 보고 누가 한 말인지 안다. 작은 전산실이 된 책상이 이제 좀 덜 부담스럽다. 컴퓨터를 다섯 대 가진 게 아니라, 비서 한 명을 다섯 군데 둔 셈이니까.